"오가노이드, 동물실험 대체 아닌 보완기술… 타깃 기반 신약개발에 적격"

  • DATE :
    2024-09-24 15:10:38
  • VIEW :
    996

히터뷰 |

이진근 그래디언트 바이오컨버전스 대표


펄펄 끓는 냄비 속 물의 양을 가늠하려면 한소끔 식혀야 하듯, 한 때 '핫'했던 키워드의 본질을 돌아보려면 뜸을 들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구태여 뜸 들이면서까지 기업을 취재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이지만, '예전에 핫하던 그 키워드는 요즘 어떻더라?'하는 호기심에 돌아보면 의외로 배움을 얻게 된다.


'오가노이드'라는 키워드가 그렇다. 오가노이드의 느낌은 마이크로바이옴, 이중항체, mRNA와 비슷한 듯싶다. 한 때 업계의 트렌드로 급부상해 시선을 독점하곤, 얼마 지나지 않아 '꾸준히 하는 기업만 하는' 분야로 남았다. 열기에 가려 보이지 않던 펀더멘털을 관찰하기 좋은 시기라는 이야기다.


그런 의미에서 그래디언트 바이오컨버전스는 흥미로운 소재다. 이것저것 하기보다는 오가노이드 기술 하나를 붙잡았다. 거기서 시장이 기대하던 부분 중 되는 부분은 살리고 안 되는 부분은 과감하게 덜어내 왔다. 차분하게 식은 오가노이드라는 재료로 어떤 기틀을 꾸려왔는지 들어보고자, 이진근 대표를 만났다.


이진근 그래디언트 바이오컨버전스 대표 / 사진=박성수 기자 


오가노이드 기술의 인기가 약해진 듯합니다. 동물실험을 완전대체하거나 혁신재생치료제로 쓰이는 것이 어렵지 않겠나하는 공감대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래디언트 바이오컨버전스의 사업기반은 오가노이드 기술입니다.


"미니 장기와 재생치료제로써 오가노이드를 받아들이는 건, 저희로서는 아직 우려의 시각이 있어요. 생체 외에서 인체 조직 모사가 일부 가능하다는 개념만으로는 생체 내에서 의도한 만큼의 재생효과를 내기 까다로울 거라 생각해서요. 줄기세포가 재생치료제 후보로써 기대를 모았던 데 비해, 거기 미치지 못한 임상결과를 냈던 것과 비슷합니다.


그래디언트의 전신인 인터파크가 바이오 산업에 진입하던 당시, 애초에 인터파크는 오가노이드 기술을 데이터 생성 플랫폼의 일종으로 여겼어요. 완전한 미니 장기나 재생치료제로 봤다기보단 말이죠. 이커머스(E-commerce)에서 시작된 기업이니 데이터 산업에 관심이 있었고, 오가노이드 기술도 그런 시선으로 바라봤던 겁니다. 즉 인체 세포ㆍ조직을 생체 외에서 모사하는 오가노이드는 약물 평가 플랫폼으로 활용되는 게 가장 좋겠다는 생각인 거죠."


그래디언트 바이오컨버전스가 제공하는 오가노이드 모델에서 가장 지분이 큰 부분이 암 모델로 압니다. 암 오가노이드 개발을 선택한 계기, 무엇일까요?


"항암제 개발에 자주 쓰이는 기존 세포실험에서, 시험 대상으로 쓰이는 암세포 조직은 서로 유전적으로 동일해요. 하지만 실제 인간 체내에 서식하는 암 조직은 유전적으로 다양하게 구성돼 있죠. 이것을 세포실험 단계에서 모사하지 못한다는 건 개발에 리스크를 주는 부분입니다.


이런 문제의식에 기반해 오가노이드 모델이 개발됐습니다. 실제 암 조직의 유전적 다양성을 모사하는 것인데, 예컨대 EGFR 변이가 일어난 암세포가 일정 비율로 섞여 있는 모델을 구현하는 식입니다. 이렇게 기존 세포실험이나 동물실험에서 구현하기 힘들었던 부분을 오가노이드에서 먼저 확인하면서 약효와 내성을 예측합니다."


일각에선 오가노이드가 동물실험을 대체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 가능성,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언젠가 오가노이드가 동물실험을 대체할 것이라는 예측에 대해선 저희도 큰 의문을 제기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단기적으로 그게 가능할 것 같지는 않아요. 예를 들어 임상에 진입하기 전 동물실험에서 반드시 확인하는 부분 중 하나가 용량결정(Dose Range FindingㆍDRF)이죠. 체내에 투여할 약물량을 계산하는 데 있어 아직 동물모델을 대체할 만한 오가노이드 모델을 만들기는 어려워요. 무리하게 동물실험을 대체하게 되면 오히려 환자에게 리스크를 더 안기는 방향으로 갈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 오가노이드 모델은 동물실험을 대체하기 위해 쓰인다기보다, 동물실험을 보완하기 위해 쓰입니다. 암 동물모델 중에 PDX만 봐도, 환자 암조직을 떼어다가 마우스에 이식하는 방식입니다만 생착 성공률이 상당히 떨어집니다. 또 생착시켜서 실험을 진행하고 나면 그 모델을 다시 쓸 수가 없어요.


이런 단점을 오가노이드로 보완할 수 있어요. 오가노이드도 PDX처럼 생착이 가능하거든요. 실제 환자의 암조직처럼 유전적 다양성을 지닌 암 오가노이드를 마우스에 생착시켜 실험을 진행합니다. 오가노이드 모델은 계속 보유하고 있으니, 똑같은 마우스 모델을 재생산하는 것도 가능하고요."


그래디언트 바이오컨버전스가 확보한 환자 기반 폐 오가노이드의 숫자와 카테고리 / 그래픽=그래디언트 바이오컨버전스  


그래디언트 바이오컨버전스가 확보한 환자 기반 대장 오가노이드의 숫자와 카테고리 / 그래픽=그래디언트 바이오컨버전스 


오가노이드 모델의 핵심은 '유전적 다양성 모사'인 것으로 보입니다. 현행 세포실험과 동물실험에서 아직까지 구현이 힘든 부분이니까요. 이런 장점을 살리는 방향으로 사업을 전개하셨을 것 같습니다.


"저희가 보유한 암 오가노이드 모델이 800종 가까이 됩니다. 각각 다른 암 환자에서 암조직을 떼어다가, 조직의 유전적 다양성을 모사하는 오가노이드를 제작하는 겁니다. 실제 암조직과 오가노이드에 대한 NGS(Next Generation Sequencingㆍ염기서열분석)도 모두 진행합니다. 보수적으로 말하자면 아시아 최대 규모의 오가노이드 모델 뱅크(Bank)이고, NGS까지 모두 완료된 것을 감안하자면 세계 최대 규모입니다."


오가노이드 뱅크를 구축하고 상업화시키는 데 여러 허들이 있었을 텐데, 예를 들어 어떤 게 있었을까요?


"우선 환자 조직이 필요하니, 병원 네트워크가 필요해요. 환자 조직에 엑세스하는 건 나날이 어려워지는 실정이지만, 수년 전부터 공동 연구를 통해 샘플을 얻어올 수 있었죠. 국내 7개 대형병원과 이처럼 협업하고 있습니다.


또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어요. 오가노이드 질병모델을 만든다는 게 생각보다 까다롭습니다. 대표적인 문제가 '노말 컨테미네이션 패러독스(Normal Contamination Paradoxㆍ정상세포 오염 패러독스)'인데요. 환자 암조직을 받아다가 오가노이드로 배양시킬 때, 암조직 내 섞여있는 정상세포가 암세포보다 빠르게 생장하면서 암 오가노이드 구축에 실패할 수 있습니다. 배양 프로토콜에 대한 노하우가 꼭 필요한 부분이죠."


해외에서도 널리 알려진 문제일텐데, 그래디언트 말고도 이걸 해결해서 오가노이드 뱅킹을 상업화 수준까지 끌어온 기업이 더 있나요?


"저희와 기술 협업이 이뤄지고 있는 한스 클레버스(Hans Clevers) 박사의 휴브렛(Hubrecht Institute) 정도가 있겠습니다. 세계적으로 봐도, 환자 조직마다 배양 프로토콜을 달리 적용하는 노하우가 있는 곳은 휴브렛과 그래디언트 바이오컨버전스 둘뿐이에요. 조금 조심스럽게 말씀드리지만, 달리 경쟁자로 볼 수 있는 기업은 더 없는 듯합니다."


오가노이드 모델의 실제 활용례를 더 듣고 싶습니다. 상상컨대 항암제 후보물질 발굴에 자주 쓰일 것 같습니다. 후보물질 10개를 오가노이드 뱅크에 일괄적으로 테스트해서 반응성이 높은 암종을 찾는다던지요.


"초기 후보물질 발굴을 문의하는 고객사들도 꽤 있습니다. 또 임상 디자인을 위해 스크리닝하는 케이스도 있죠. 글로벌 제약사가 보통 걱정하는 문제 중 하나가 전임상에선 효과를 봤는데 임상에서 그게 재현되지 않는 경우거든요. 그래서 약물 불응성을 미리 확인해 보기 위해서 오가노이드에다 먼저 실험하는 의뢰가 들어옵니다."


예를 들어 'EGFR 변이 비소세포폐암 4차 치료제를 개발하고 싶다'는 의뢰가 있을 때, 3차 치료까지 불응했던 환자의 조직으로 개발된 오가노이드 모델을 찾아다 실험하는 식으로 이해하면 될까요?


"그렇습니다. 대단위로 의뢰를 주는 제약사들 같은 경우는 보통 말씀하신 방식의 스코프(Scope)를 기대합니다. 그렇다 보니 저희가 집중해서 개발해둔 분야는 뱅킹과 NGS만이 아닙니다. 바이오인포메틱스(Bioinformaticsㆍ생물정보학)에 대한 이해도도 중요해요. 저희 직원 60명에서 10명이 바이오인포메틱스와 인공지능(AI) 쪽 인력일 정도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를 예로 들어 설명하자면요. 어떤 제약사에서 약물을 오가노이드에 테스트하고 싶어할 때, 그 약물이 타깃하고자 하는 물질이 오가노이드 내에 발현하고 있어야 해요. 그 물질을 발현할 수 있는 오가노이드를 바로 선별해서 실험에 쓰려면 저희가 보유한 오가노이드 모델들에 대한 유전정보를 모두 가지고 있어야 하고요. 결국 바이오인포메틱스와 AI를 동원해야 하는 작업입니다."


암 모델 외 CNS, 희귀질환 오가노이드도 개발해 제공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두 분야에 있어 시장의 언멧니즈(Unmet Needs)는 무엇인가요?


"CNS 쪽을 먼저 보자면, 알츠하이머병이나 파킨슨병 신약을 개발한다 했을 때 기존 세포실험으로는 2차원 배양 환경에서 약물을 테스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항암 모델에서 제기됐던 문제처럼, 실제 인간 체내 환경을 잘 모사하지 못해요. 인간의 뇌에는 몇 가지 형태의 세포들이 3차원적으로 서로 섞여있고, 그 상태에서 질환이 발병하니까요.


그래서 CNS 오가노이드를 만들 때는 환자 세포를 가져다가 iPSC(induced Pluripotent Stem Cellㆍ유도만능줄기세포)를 먼저 제작합니다. 유전적 결함으로 인해 발병한 CNS 질환이라면, 이런 방식으로 CNS 오가노이드를 만들었을 때 그 병리가 재현돼요. 예컨대 알츠하이머 환자 오가노이드에서 아밀로이드 베타(Amyloid beta)의 축적을 관찰할 수 있다던지요. 또 iPSC를 통한 3차원 배양이기 때문에, 인간의 뇌에서 관찰되는 5개 신경층이 모두 형성되며 체내환경을 더 잘 모사할 수 있게 됩니다.


희귀질환 쪽은 신약개발 수요가 상대적으로 낮은 탓에 동물모델이 보통 부재합니다. 그래서 오가노이드 모델을 구축하는 사례가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희귀 질환의 경우, FDA(미국 식품의약국)와 EMA(유럽 의약품청)도 이런 상황을 고려해 오가노이드 모델로 실험한 결과를 인용하는 케이스가 계속 나옵니다."


그래디언트 바이오컨버전스의 주력 서비스 부문 일람 / 그래픽=그래디언트 바이오컨버전스 


그래디언트 바이오컨버전스 사업의 2개 축 가운데 오가노이드 부문을 여쭤 보았고, 이제는 신약개발 부문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오가노이드 스크리닝을 통해 파이프라인 도출을 하실 것 같기는 합니다.


"맞습니다. 우선 저희가 가진 오가노이드 뱅크를 활용해서 신규 타깃을 발굴하는 데에서 신약개발을 시작합니다. 이 타깃 발굴에 대한 니즈는 매우 커서, 유수의 기업들은 AI를 동원해서 발굴 작업을 수행해요. 이런 기업이 세계적으로 800여개 되는 것으로 압니다.


다만 AI를 어떻게 활용하는지는 회사마다 다를 수 있어도, 그 AI에 들어가는 데이터는 대부분 비슷합니다. 여태 나온 임상 정보와 환자 조직에서 확보한 NGS 데이터, 이렇게 두가지밖에 없습니다. 이 데이터는 마음대로 재생산하거나 재시험하는 게 힘들어요. 환자에게 찾아가서 약을 또 투여해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이런 부분을 어느 정도 해소시키는 것이 오가노이드 모델을 통한 데이터 수집이라 하겠습니다. 보통 환자 1명에서 나올 수 있는 데이터는 제한돼 있지만, 환자 조직을 샘플링해서 오가노이드를 구축하면 데이터를 무한정 얻을 수 있어요. 이것을 AI에 인풋(Input) 데이터로 적용시키는 차별성을 확보할 수 있겠죠.


또 타깃에 대한 검증도 바로 이뤄질 수 있어요. 특정 타깃을 조절하는 유전자를 오가노이드 모델에서 조작해 약물 반응을 수시로 확인해 보는 겁니다. 예를 들어 특정 블록버스터 약물에 대한 내성에 연관된 타깃을 찾았을 때, 그 타깃을 발현시키는 유전자를 잘라내고 나니 오가노이드에서 약물 내성이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는 식이죠."


도출된 파이프라인들은 유전자 치료제 계열인가요?


"유전자 치료제에 저희가 관심이 많은 건 사실이나, 실제 개발 중인 리드(Lead) 파이프라인은 스몰몰레큘(Small moleculeㆍ저분자 화합물)입니다.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개발에 1차적인 초점으로 맞추고 있고요.


기존 비소세포폐암 치료제에 대한 내성 중, 절반 가량은 그 원인이 명확하지 않아요. 이런 부분을 극복할 수 있는 타깃에 대한 발굴 수요가 높죠. 저희는 이 중에서 저분자 화합물로 조절 가능한 타깃을 발굴했고, 일부 검증이 완료되면서 개발을 시작시킨 상태입니다."


'항체나 ADC같은 유명한 모달리티 대신 왜 화합물을 할까?'라는 의문도 들 수 있겠습니다. 화합물 신약 개발로 방향을 잡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분자 화합물은 꾸준하게 니즈가 높고 트렌드를 덜 타는 모달리티예요. 전달 효율이 높아 전신에 고루 분포시킬 수 있고, 많은 경우 경구투여가 가능하니 투약 편의성도 좋습니다. 이런 장점 덕에 기존 치료제와 병용시키기가 덜 까다롭습니다.


또 세포 표면만이 아닌 세포 내부에 있는 물질까지 타깃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죠. 개발 트랙을 다양하게 가져가는 전략이 가능해요. 제조 단가가 낮아서 약가 설정에 유리하다는 점도 있습니다."


앞으로 어디에 집중할 계획인가요?


"말씀하셨듯 오가노이드 뱅킹과 신약개발이란 2개 축을 중심으로 사업을 개진해나가고 있습니다. 오가노이드 부문을 통해선 암환자 유래 오가노이드(Patient Derived OrganoidㆍPDO) 기반 신약 개발 플랫폼과 AI 타깃 발굴 시스템에 주력할 예정이에요. 이를 통해 글로벌 기업뿐만 아니라 한국 바이오 기업들이 퍼스트 인 클래스(First in Classㆍ계열 내 최초) 신약을 창출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겠죠. 또 신약 부문에선 현재 개발 중인 프로그램을 내년 하반기 즈음에 조기 라이선스 아웃(License OutㆍL/Oㆍ기술이전)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출처] 히트뉴스 / 박성수 / 2024.09.24  


http://www.hit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7725